대구범어동형사전문변호사 천주현 박사(대한변호사협회 대구 경북 현직 1호 형사전문)의 저서 ‘시민과 형법’을 통하여, ‘무단횡단 보행자 사망 무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민과 형법 121회차]

‘무단횡단 보행자 사망 무죄’

‘시민과 형법’ (박영사)

제1편 변호인 리포트

[121] 무단횡단 보행자 사망 무죄

무단횡단 사고 운전자 처벌은 주위 사정, 보행자의 보행 속도, 차량의 운행 속도, 운전자의 주의의무 정도를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보행자의 무단횡단이 평소 자주 예상되던 위치라든가 당해 사고 운전자의 운전과실이 정상을 넘어 특수했다면, 무단횡단사고 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에게 유죄 판결이 선고된다. 그런 가운데 최근 대법원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주목된다(대법원 2018도11767 판결).

사고발생 도로는 왕복 6차선, 전남 광주 소재 도로였다. 택시운전기사인 피고인은 편도 3차로 도로를 시속 50km 속도로 운전하던 중 무단횡단 중이던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치는 바람에 한 달 후 피해자가 사망했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왕복 6차로 도로였고 당시 차량이 많이 다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함부로 무단횡단을 한 점, 무단횡단이 차량 진행신호가 들어온 후 시작된 점을 고려하여, 이러한 경우에도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는 예상할 수 없다고 보아 운전자의 과실을 부정했다. 한편 CCTV 상으로 피해자는 상당한 속도로 무단횡단을 하였기 때문에 발견 즉시 제동을 했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대법원이 2심의 견해와 같이 보고 원심을 확정한 이 사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과실과 신뢰의 원칙, 그리고 인과관계이다. 차량의 운전자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주체가 되고, 차의 운행으로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할 경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특별히 다루어진다.

교특법 유죄 판결이 선고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과실이 있고, 그로 인하여 사상의 결과가 발생하고, 과실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물론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후 도주한 경우에는 특가법상 도주차량운전죄가 성립하여 가중처벌되고, 술이나 약에 취하여 운전대를 잡아 사상케 하면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죄가 성립되기도 한다.

과실은 정상의 주의를 태만히 한 경우다. 고의범 처벌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형법은 과실을 특별히 처벌하는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처벌하고, 과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결과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을 필요로 한다. 과실범은 그러한 과실과 사상의 결과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요구한다. 음주, 무면허,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차선 변경방법 위반, 횡단보도 서행의무 위반, 전방주시 위반 등이 운전사고의 주요 과실이 되는데, 이 사건에서는 서행의무 내지 전방주시의무 위반이 문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운전자의 과실을 조각하는 주요한 법리가 신뢰의 원칙이다. 자동차전용도로 및 고속도로에는 보행자나 자전거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비행기 조종사는 활주로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외과의사는 마취과의사가 과잉마취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가 그것이다. 이 사건 법원도 신호변경으로 차량이 출발하는 시점에 하필 피해자가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피고인이 신뢰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피해자가 5개 차로를 넘어 무단횡단할 것을 예측하고 운전할 것을 피고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한편 과실범 성립에 요구되는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판결은 의미 있는 판시를 담고 있다. 이 사건 2심은 피해자가 상당한 속도로 무단횡단을 한 만큼 피고인이 발견 즉시 제동장치를 조작했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과실 문제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부정한 대목이다.

인과관계는 자연적, 과학적 개념으로 시작되어 법적, 규범적 개념으로 끝을 맺는다. 규범적 판단의 대표적인 것이 상당성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과가 통상 발생할 경우에만 상당성이 인정된다. 또 인과관계는 객관적 귀속을 요구한다.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합법적 행위를 하였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고인에게 지울 수 없다. 이를 합법적 대체행위이론이라고 하고, 강학상 개념이다(법원은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이론을 ‘상당성’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시한다).

이 사건 피고인에게 운전과실이 있었더라도 6차로 반대편에서 빠른 속도로 신호를 위반해 갑자기 차량 앞으로 돌진하던 피해자를 칠 수밖에 없었으므로(사고를 피할 수 없었으므로)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과실, 주의의무, 인과관계, 사상의 결과,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등은 모두 법적인 판단이 요구되고, 형사변호사의 각도에 따라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예민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상으로 대구범어동형사전문변호사 천주현 박사의 저서 ‘시민과 형법’을 통해 ‘무단횡단 보행자 사망 무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천주현 변호사는 대구에서 운전자 과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사건 등 다수의 형사사건을 취급하고 있습니다.